나는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고, 정신장애 2급이야. 블로그는 20년 넘게 써왔는데 예전 블로그는 닫은 상태야.

올해 2026년 1월, 직장에서 폭언과 신체적인 폭력을 당했고,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 그 뒤 반년 정도는 거의 누워 지내며 몸을 움직이지 못했어. 그래도 다시 일어섰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복귀하게 됐어. 그 시간을 지나면서 생각은 전보다 깊어졌고, 무게도 더해진 것 같아. 나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도 조금씩 더 넓게 바라보게 됐어.

그래서 자기소개를 다시 쓰기로 했어. 이번이 네 번째야.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건강하지만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도 내 글이 어떤 형태로든 닿았으면 좋겠어.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써보려고 해.

색이 없던 세상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난 이미 학대받고 있었어.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어른의 힘으로 맞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전해질까. 맞아서 이가 부러지고 피투성이가 됐어. 피를 흘린 채로 현관에서 걷어 차여 몇 미터나 날아간 적도 있었지. 그 뒤로 문이 잠기고,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는 고함이 들렸어.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부정했어. 열이 40도를 넘어 누워 있어도 “얼마나 귀찮게 할 거야.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기나 해?”라며 소리를 질렀어.

나는 몸이 약해서 한 달의 절반 정도는 누워 지냈어. 힘도 거의 없었고. 당시에는 공영주택 5층에 살았는데, 처음 자살을 생각한 건 유치원에 다닐 때였어. 창밖을 내려다보며 여기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지. 실제로 몸을 내민 적도 있어.

유치원에서는 강물에 떠밀린 적이 있었어.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다리를 걷어 차여, 모래밭에 쓰러진 채 날이 저문 적도 있었고.

내 왼쪽 어깨에는 500엔짜리 동전만 한 검은 반점이 있어. 옷을 갈아입거나 수영하는 시간이면 그게 징그럽다는 이유로 심하게 괴롭힘을 당했어. 성적인 피해도 여러 번 겪었고 그 괴롭힘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어.

맞아서 입안이 찢어지고 피를 뱉는 일에도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어. 그게 내 일상이었으니까. 저항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그저 그 일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리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어.

이 무렵까지의 기억에는 색이 없어. 떠오르는 장면들이 전부 흑백이야. 회색과 검은색으로만 기억되는 슬픈 시절이었어. 그런데 딱 하나, 선명한 색으로 남아 있는 장면이 있어. 유치원에서 문화제 같은 행사를 할 때 내가 그린 그림이야. 바닷속에서 거대한 검은 물고기가 피를 쏟으며 작은 물고기들을 덮치고 있었어. 새까만 물고기와 새빨간 피, 그리고 도망치는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 큰 물고기 한 마리가 그림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어. 그때 내가 느끼던 세상이 그대로 그림이 됐던 것 같아.

처음으로 나를 받아준 어른

초등학교 4학년 무렵까지 그런 폭력과 괴롭힘이 이어졌어. 공부는 전혀 못했고, 운동도 제대로 못했어. 하루하루가 그저 괴로웠지.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스스로를 해치려다 굳어버린 채 서 있던 날도 많았어.

그런데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받아주는 어른을 만났어.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 그 선생님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줬고, 선생님이 담당하던 육상부에도 들어오라고 했어. 거기서부터 체력도 학력도 조금씩 좋아졌어. 특히 육상은 성장기와 맞물려 실력이 빠르게 늘었고, 졸업할 무렵에는 달리기로 학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가 됐어.

그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6학년 때도 계속 담임을 맡아줘서, 2년 동안 나를 지켜봐 줬어. 그 시간 동안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배웠던 것 같아. 그 따뜻한 마음 덕분에 나도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리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어. 지금은 진심으로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해. 절망의 바닥에 있어도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면 구원받을 때가 있어. 내가 처음 경험한 구원이었어.

편차치 35에서 60대 후반까지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성적은 여전히 학년 최하위였어. 그런데 체력은 계속 좋아졌어. 육상부에서 훈련하며 달리기로는 학년 1등이 됐지. 여러 번 결승선을 끊고 주먹을 들어 올릴 만큼 마음도 회복돼 있었어.

중학교 1학년 겨울, 학력평가에서 편차치가 35 이하로 나온 걸 보고 이건 정말 안 되겠다 싶었어. 일본에서 시험 성적의 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수치인데, 평균인 50보다 한참 낮았던 거야. 그래서 학원에 들어갔고, 매일 새벽 3시까지 공부한 뒤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하러 가는 생활을 시작했어. 지금 돌이켜보면 꽤 무리한 생활이었지.

학원은 아주 엄격했고 강사도 정말 무서웠어. 고함이 오갈 때마다 어릴 적 공포가 되살아나 몸이 굳기도 했어. 상당히 힘들었지만 젊어서였을까. 어떻게든 버텼어.

그렇게 공부한 끝에 고등학교 입시 전에는 편차치가 60대 후반까지 올라갔어. 평생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어. 중학교에서는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고 친구도 많이 생겼어. 반장도 했고, 각 반의 반장들을 대표하는 학년 대표도 맡았어. 그리고 그때는 운동에 빠져서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나 정말 인기 많았더라. 하하.

초등학교 때의 나를 알던 아이가 “너는 어느 고등학교 가냐? 나는 ○○고등학교 가는데”라고 물은 적이 있어. 내가 진학할 학교 이름을 말하자,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히 가버렸어.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나. 나를 괴롭히던 아이와 괴롭힘을 당하던 나의 처지가 완전히 뒤집힌 것처럼 느껴졌어. 아무리 바닥에 있어도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바꿀 수는 있구나. 그걸 처음으로 실감했어

심리학과의 만남, 그리고 대학

고등학교는 분위기가 차분한 학교였어. 꾸준히 공부한 결과 내신 평균은 5점 만점에 4점이 됐고, 대학 추천입학을 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됐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 도서관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책을 읽다가 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걸 알았어. 이후 대학에서도 심리학과를 선택했지. 하지만 대학에서는 우울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지.

3학년 무렵부터는 아르바이트에 힘을 쏟았고, 그러다 인명구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 그곳에서 생애 첫 연인이 생겼지. 서로 첫 연애였고, 이후 8년 동안 만나게 됐어.

8년 동안 온전히 믿었던 사람과의 이별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마음 깊이 믿게 되었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냈고, 상대의 모든 것을 믿고 받아들였어.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지. 그런데 그 연애의 끝이 내 인생에서 가장 깊은 상처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갑자기 “다른 남자와 결혼할 거니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어. 헤어지는 방식도 잔인했어. 8년을 만났고, 서로 결혼을 굳게 약속했는데도 이런 말을 했어.

“그동안 친구들에게 너를 한 번도 소개하지 않은 건, 부끄러워서 소개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그 밖에도 심한 말을 많이 들었어. 나도 미숙했고, 어딘가 오만한 면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그 말들에 상처받지 않았던 건 아니야. 어릴 때부터 사람을 믿지 못했던 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연 상대였어. 그 상실감은 내게 단순히 연인을 잃었다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어.

한 달 만에 체중이 15킬로그램 줄었어. 제대로 잠들지 못했고, 늘 절망감 속에 있었어.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위험하게 운전하기도 했지. 당시 나는 서점에서 일하고 있었어. 어느 날 손님이 “그게 무슨 태도야”라며 소리를 질렀어. 그 말에 정신이 들어 거울을 봤는데, 내 얼굴이 정말 엉망이더라고. 그 순간 더는 이 일을 계속할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

서점 직원에서 자동차 정비사로

국가 자격증을 따서 이직하려고 전문학교에 다시 들어갔어. 입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전철 안에서 과거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났어. 서 있을 수 없어서 중간에 내려 주저앉았지. 마침 눈에 들어온 게 정신과 간판이었어. 홀린 듯 그 병원에 들어갔어.

한편 학교 공부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서 즐거웠어. 처음부터 끝까지 성적은 가장 좋았고, 현에서 표창을 받을 정도였어. 자동차 정비사 국가 자격증을 땄고, 서점 직원에서 정비사로 이직할 수 있었어. 책이 좋아서 서점에 취직했다가, 실연으로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전혀 다른 세계로 뛰어든 거야.

이렇게 늘어놓으면 참 무모한 길처럼 보이기도 해. 하지만 그때그때의 나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했던 거야. 그런데 정비사로 일한 곳들도 노동환경이 열악했어. 여러 번 쓰러지고 이직하기를 반복하다가 왼쪽 눈 시야의 절반이 보이지 않게 됐어. 더는 그 일을 계속할 수 없었고, 이후에는 파견직과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게 됐어.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이 무렵 대학원 강의를 들었어. 대학 심리학과에서도 제대로 찾지 못했던 나 자신을 다시 알아보고 싶었어. 그래서 심리학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해본 거야.

그때 가족심리학에서 ‘역기능 가족’이라는 개념을 만났어. 나 한 사람의 성격에서만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가족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는 관점이었어. 그게 나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됐지. 가족 안에서는 불안이나 긴장, 문제에 대한 부담이 특정한 한 사람에게 집중되기도 해.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가정의 학대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나에게는 여동생이 있어. 여동생은 학대받지 않았고, 오히려 소중하게 자랐어. 그 차이를 생각하면 집 안의 부정적인 부분이 내게 집중됐던 것처럼 느껴져. 가족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잘못해서 그런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말고도 다른 해석이 가능해졌어.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부모 역시 상처를 안고 자란 면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어. 조부모는 전쟁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야. 그 시대와 환경이 부모에게도 어떤 영향을 줬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물론 그 사정을 내가 전부 아는 건 아니야. 그렇다고 학대가 어쩔 수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지식은 내 분노에 이해라는 시선을 더해줬어.

정신장애를 안고 산다는 것

그 뒤로도 정신장애를 안고 일하는 건 어려움의 연속이었어. 차별과 편견, 직장 내 괴롭힘이 이어졌고, 여러 번 이직해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 우울한 상태는 점점 심해졌어. 그래도 다시 일어났고, 또 쓰러졌어. 그렇게 반복하다가 결국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지내게 됐어.

내 밑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있어. 부모와의 관계에서 안심하고 사랑받는 감각을 충분히 갖지 못했어. 그게 사람을 믿기 어려운 마음과 나 자신을 아끼기 어려운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고 느껴. 상대가 격하게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지르면 과거의 공포가 되살아나 몸이 굳고 생각이 멈춰버려. 그런 상대에게는 마음을 완전히 닫고 나를 지켜. 오랜 시간 몸에 밴, 살아남기 위한 반응이야. 한편으로는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힘든 상황에서도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 늘었다고 느껴.

언제나 냉정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래도 감정에 휩쓸릴 것 같으면 내가 겪은 일과 배운 지식에 기대어 상황을 정리해. 그렇게 어떻게든 나를 지탱해 왔어.

그리고 지금, 다시 새로운 싸움 속에 있어

2026년 1월 16일, 일하던 취업지원 A형 사업소에서 일이 생겼어. 근무 중 동료 이용자에게 심한 폭언과 신체적인 폭력을 당했어. 대표는 현장에 있었지만, 충분한 대응은 하지 않았어. 그 뒤에도 약 두 시간 반 동안 나는 상대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했어. 이후 면담에서도 안심하고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줄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책은 나오지 않았어.

대신 내게 불리한 조건만 제시됐어.

“견뎌야 한다.”
“나라면 그만둘 것 같다.”

그런 말도 들었어.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그 뒤 반년 정도는 누워 지냈어. 그동안 체중이 10킬로그램 줄었고, 변실금이 심해져 기저귀를 써야 하는 상태가 됐어.

그래도 나는 다시 일어났어

돌이켜보면 내 삶은 여러 번 바닥으로 가라앉았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삶을 끝내고 싶었던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나 조금씩 달라졌어. 편차치 35 이하에서 60대 후반까지 성적을 올렸어. 8년 동안 만난 사람과의 이별로 15킬로그램이 빠진 상태에서 전문학교에 다시 들어가 국가 자격증을 땄어. 시야의 일부가 보이지 않게 돼 일을 잃은 뒤에도 다른 길을 찾았어. 그리고 2026년 10월 19일.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게 됐어. 마침 내 생일이야. 그동안 쌓아온 컴퓨터 활용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번에는 재택근무로 일하게 됐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일할 기회를 얻은 거야.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지금 바닥에 있는 사람도 있을 거야. 병을 안고 하루하루를 겨우 보내는 사람. 부당한 일을 겪고 상처받은 사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먼 미래를 생각할 수 없을 때, 나는 바로 다음 한 걸음만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어. 하지만 그 한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때도 있었어. 반년 동안 움직일 수 없었던 내가 당장 일어나라고 말할 수는 없어. 앞이 보이지 않는 채로 흘려보낸 시간도 있었고, 누군가 나를 받아줘서 나아갈 수 있었던 시간도 있었어.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새로 시작한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오늘 나는 여기 있고, 다시 자기소개를 쓰고 있어.

네 번째 자기소개는 여기까지야. 다음번 자기소개에는, 나는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게 될까.